90년대까지 단속에 쫓겨
그래도 장사는 그때 잘돼
경춘선숲길 조성 후 재도약
코로나19 위기 잘 극복
손꼽히는 시장으로 성장 꿈꿔
지역사회 활동 적극 참여할 것
“도깨비시장도 많이 발전했어요. 시설이나 환경 등은 이제 많이 갖춰졌어요. 다만 상인들의 의식이 좀 바뀌어야 해요. 더 친절해야 하고 소비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안마을신문이 지난 18일 도깨비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박용선 상인회장을 만났다.
도깨비시장은 경춘선숲길과 함께 공릉동 발전의 양대 축으로 꼽히고 있다. 도깨비시장은 지난해까지 3년간 첫걸음 기반조성, 문화관광형사업 등을 통해 크게 변모했다. 그 중심에는 박용선 상인회장의 역할이 있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잖아요. 16세에 무작정 상경했어요. 무어라도 배워보겠다고.”
그게 1972년이다. 상경한 박 회장은 활판 인쇄 등 다양한 경험을 하다가 등 떠밀리듯이 군대에 갔다.
“제대하고 82년부터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을 시작했어요. 그게 공릉동과 첫 인연이에요. 그리고 40여 년 장사했어요.”
그때만 해도 시장 자체가 무허가였고 노점은 단속 대상이었다.
“쇼핑센터가 건물을 지어 들어서면서 집중단속했어요. 맨날 밤낮으로 쫓겨 가면서 장사하고 서글펐죠. 노점생활을 한 20년 했어요.”
그래도 그때는 장사가 잘됐다.
“그 시절엔 40~50평 되는 일반 주택에 12가구까지 살았어요. 동네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니까 시장이 잘 될 수밖에 없죠. 대형마트도 없었으니까요.”
당시만 해도 경춘선 기차가 아직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차단벽도 없었다.
“철길에서 사고가 몇 번 있었어요. 원주민들만 살 땐 문제가 없었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철길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사고가 난 거예요.”
경춘선에 높다란 벽이 생기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바글바글 살던 사람들도 떠나고 멀지 않은 곳에 대형마트도 들어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노점하던 사람들이 점포로 입점하고 시장도 제 모습을 갖춰갔어요. 저도 그제서야 입점하면서 영재네농산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상인회가 결성되고 그때쯤 인증시장이 돼서 비로소 합법적인 시장이 됐어요.”
그때부터 시장 현대화 사업이 시작됐다.
“그때 아케이드(아치 형태의 지붕)가 설치됐어요. 비로소 비 안 맞고 시장을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하지만 시장 입장에선 그 시절이 제일 장사가 안됐어요.”
경춘선에 설치된 장벽으로 인해 시장 접근에 큰 어려움이 생겼다. 경제력이 좋아진 사람들은 시장을 외면하고 대형마트를 찾았다.
“다시 시장이 활기를 찾은 것은 경춘선이 멈추고 공원으로 다시 태어나면서부터예요. 공원이 활성화하면서 시장이 막 살아날 무렵 코로나가 닥쳤어요.”
모두 위기다 생각할 때 오히려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방역이나 위생 문제에 대해 아주 신경 썼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대형마트를 가던 사람들이 시장으로 찾아왔어요. 그리고 와보니 오히려 좋은 물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일 수도 없던 시절, 멀리 여행 갈 수도 없던 시절 도깨비시장과 경춘선숲길은 마을 사람들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 돼 주었다.
“그리고 때마침 첫걸음 지원사업, 문광형 사업 등 정부 지원사업을 따내면서 주민들에게 더 다가가고 한 걸음 도약하는 기회가 됐어요.”
뿐만 아니라 간판 교체사업, 안심매대 설치 사업, 화재·방범 시설 개선사업, 전광판 설치사업 등을 잇달아 따내며 시설 현대화를 이뤘다.
“지금 공사 중인 고객지원센터가 내년 3~4월이면 준공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정말 시설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은 시장이 될 겁니다.”
박용선 회장은 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시장이 돼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인들의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하고요 지역사회에도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종업원이 물건을 파는 대형마트와 주인이 직접 손님을 맞는 시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는 그 분이 약점인데 이를 강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맥주축제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해요. 이제 상인들도 서로 나서서 보내달라고 할 정도거든요. 이제는 시장 상인들은 마을에서 돈만 버는 사람들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강봉훈 기자
90년대까지 단속에 쫓겨
그래도 장사는 그때 잘돼
경춘선숲길 조성 후 재도약
코로나19 위기 잘 극복
손꼽히는 시장으로 성장 꿈꿔
지역사회 활동 적극 참여할 것
“도깨비시장도 많이 발전했어요. 시설이나 환경 등은 이제 많이 갖춰졌어요. 다만 상인들의 의식이 좀 바뀌어야 해요. 더 친절해야 하고 소비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안마을신문이 지난 18일 도깨비시장 상인회 사무실에서 박용선 상인회장을 만났다.
도깨비시장은 경춘선숲길과 함께 공릉동 발전의 양대 축으로 꼽히고 있다. 도깨비시장은 지난해까지 3년간 첫걸음 기반조성, 문화관광형사업 등을 통해 크게 변모했다. 그 중심에는 박용선 상인회장의 역할이 있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잖아요. 16세에 무작정 상경했어요. 무어라도 배워보겠다고.”
그게 1972년이다. 상경한 박 회장은 활판 인쇄 등 다양한 경험을 하다가 등 떠밀리듯이 군대에 갔다.
“제대하고 82년부터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을 시작했어요. 그게 공릉동과 첫 인연이에요. 그리고 40여 년 장사했어요.”
그때만 해도 시장 자체가 무허가였고 노점은 단속 대상이었다.
“쇼핑센터가 건물을 지어 들어서면서 집중단속했어요. 맨날 밤낮으로 쫓겨 가면서 장사하고 서글펐죠. 노점생활을 한 20년 했어요.”
그래도 그때는 장사가 잘됐다.
“그 시절엔 40~50평 되는 일반 주택에 12가구까지 살았어요. 동네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니까 시장이 잘 될 수밖에 없죠. 대형마트도 없었으니까요.”
당시만 해도 경춘선 기차가 아직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차단벽도 없었다.
“철길에서 사고가 몇 번 있었어요. 원주민들만 살 땐 문제가 없었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철길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사고가 난 거예요.”
경춘선에 높다란 벽이 생기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바글바글 살던 사람들도 떠나고 멀지 않은 곳에 대형마트도 들어왔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노점하던 사람들이 점포로 입점하고 시장도 제 모습을 갖춰갔어요. 저도 그제서야 입점하면서 영재네농산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상인회가 결성되고 그때쯤 인증시장이 돼서 비로소 합법적인 시장이 됐어요.”
그때부터 시장 현대화 사업이 시작됐다.
“그때 아케이드(아치 형태의 지붕)가 설치됐어요. 비로소 비 안 맞고 시장을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하지만 시장 입장에선 그 시절이 제일 장사가 안됐어요.”
경춘선에 설치된 장벽으로 인해 시장 접근에 큰 어려움이 생겼다. 경제력이 좋아진 사람들은 시장을 외면하고 대형마트를 찾았다.
“다시 시장이 활기를 찾은 것은 경춘선이 멈추고 공원으로 다시 태어나면서부터예요. 공원이 활성화하면서 시장이 막 살아날 무렵 코로나가 닥쳤어요.”
모두 위기다 생각할 때 오히려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방역이나 위생 문제에 대해 아주 신경 썼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대형마트를 가던 사람들이 시장으로 찾아왔어요. 그리고 와보니 오히려 좋은 물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일 수도 없던 시절, 멀리 여행 갈 수도 없던 시절 도깨비시장과 경춘선숲길은 마을 사람들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 돼 주었다.
“그리고 때마침 첫걸음 지원사업, 문광형 사업 등 정부 지원사업을 따내면서 주민들에게 더 다가가고 한 걸음 도약하는 기회가 됐어요.”
뿐만 아니라 간판 교체사업, 안심매대 설치 사업, 화재·방범 시설 개선사업, 전광판 설치사업 등을 잇달아 따내며 시설 현대화를 이뤘다.
“지금 공사 중인 고객지원센터가 내년 3~4월이면 준공될 거예요. 그때가 되면 정말 시설 면에서는 부족하지 않은 시장이 될 겁니다.”
박용선 회장은 꿈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서울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시장이 돼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인들의 인식개선이 우선돼야 하고요 지역사회에도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종업원이 물건을 파는 대형마트와 주인이 직접 손님을 맞는 시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는 그 분이 약점인데 이를 강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에서 맥주축제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해요. 이제 상인들도 서로 나서서 보내달라고 할 정도거든요. 이제는 시장 상인들은 마을에서 돈만 버는 사람들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강봉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