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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택수 지구불시착 대표>“작지만 따뜻한 네트워크 공간 만들어 갈게요”

강봉훈
2024-01-26
조회수 371


이사 후 찾아주는 사람 늘고 매출 증가

여러 지원사업···책방 운영에 도움 안돼

어눌한 듯한 인상 오히려 사람 끄는 매력

 

 

그의 책방엔 한기가 가득하다. 이사한지 이제 보름 남짓, 다섯평 정도 좁은 책방은 아직도 정리가 다 끝나지 못한 듯하다. 전기요금 걱정에 난방기구도 넉넉하게 들이지 못한 듯.

 

마을과마디가 문을 닫으면서 함께 운영되던 지구불시착이 독립해 지난 1일자로 새 자리로 이사했다. 안마을신문은 지난 17일 김택수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말수가 적고 어눌하면서도 장난기 섞인 말투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사하고 나서 개업발이라고 해야 하나, 매출이 괜찮아요. 일부러 찾아와 주는 분들도 있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오는 분들도 곧잘 있어요.”

 

그동안 별도 비용 없이 마을 공간에 함께 있었지만 이제는 임대료도 전기요금도 걱정해야 한다. 돈 벌기 따위에는 아무 관심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고정 지출이 생겼으니 걱정이 없을 리 없다.

 

“마디에 있을 때는 카페랑 같이 하니까 커피 마시러 오는 손님도 있었는데, 비슷비슷한 거 같아요. 찾아오시는 분들도 대체로 예쁘다고 해주고 평이 좋아요. 공간 구성이나 상품 전시는 제가 좀 잘하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사람들을 더 끌기 위해서라도 추가 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이다.

 

“커피 머신을 둘 공간조차 없으니 여러 가지 구상 중이에요. 우선 간단하게 제공할 수 있는 차나 쿠키를 팔 생각이고요 머신 없이 드립 커피를 팔아볼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어요. 우선 책방이 안정되고 나서요.”

 

김 대표는 매출보다도 차 한 잔 앞에 두고 손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또 그동안 해오던 프로그램들도 계속 해야죠. 제일 오래된 것이 글쓰기모임 ‘글이다클럽’인데요.”

 

글이다클럽은 매주 수요일 저녁, 주제를 정해서 1시간 20분 정도 글 쓰고 이를 모아 책으로도 만든다.

 

“지난번에는 참가자들 글을 모아서 한 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올해는 각자 한 권씩 만들어 볼 계획이에요.”

 

이와 별도로 독서모임 ‘제인 오스틴 설득하기’도 있다.

 

“독서모임은 격주 금요일에 하는데요 함께 같은 제목의 책을 읽는 모임이에요. 우리는 따로 토론 같은 것도 하지 않아요.

 

김 대표는 이외에도 영화보기 모임, 독립출판에 도전하는 모임도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에서 하는 각종 지원사업에는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노원구에서는 ‘동네서점 바로 대출’이 시행되고 있어요. 도서관에 없는 책을 동네 서점에서 빌려 보고 반납하면 이를 도서관에서 구입해 장서로 활용하는 서비스예요. 책방을 찾아왔다가 읽을 책을 고르고도 다른 책방에 가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겠다고 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상 이 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서점에 대한 역차별이거든요.”

 

김 대표는 자신도 이 서비스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까다로운 절차로 포기했다며 누구나 구청이 요구하는 절차를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원 사업들이 있지만 정작 책방 수익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지원사업을 할수록 오히려 자생력은 줄어들고 각종 눈치를 봐야 하는 일만 늘더라구요.”

 

김 대표는 책방을 지원하고 주민들이 책을 더 많이 읽게 하려면 쉽게 ‘쿠폰’을 발행하면 된다며 누구든 책을 사고 싶으면 간단한 신청을 통해 할인 쿠폰을 받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시행되고 있는 각종 지원사업은 오히려 주민들로 하여금 책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사인을 주고 있습니다. 책에 대해서도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책방이 살아날 수 있어요.”

 

김택수 대표는 지구불시착을 시작하기 전까지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정문 인근에서 일본으로 각종 의류를 수출하는 무역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바이어가 대금 결재를 안 해주고 부도를 내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문을 닫게 됐다.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상태에서 심심풀이 삼아 그림을 그렸어요. 한 번은 이를 출력해 노트를 포장하고 인스타에 올렸는데 뜬금없이 독일에서 주문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직접 가게로 찾아와서 사갔어요.”

 

김 대표의 독특한 그림체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게 계기가 돼서 그림책 몇 권을 더 만들어 광화문에서 열리는 소소시장(예술시장)에 가지고 나갔어요. 거기서도 인기가 좋아서 다 팔았는데 그때 다양한 작가들을 알게 됐어요.”

 

이때 사귄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위탁판매해 달라며 보내왔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책방 문을 열게 됐다.

 

“이후 마을 활동가들이 우연히 들러서 알게 되고 인연이 시작됐는데 우연한 기회에 책방을 하면서 마을과마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기존에 마디를 운영하던 분이 운영이 어렵게 되면서 아예 샵인샵 형태로 들어가게 된 것이죠.”

 

김택수 대표는 동네책방은 ‘네트워크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성격이 비슷해요. 그러다 보니 누구나 편히 들어오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곳이에요.”

 

오히려 조금 어눌해 보이는 그의 성격이 책방지기로 안성맞춤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었던 조언과 입바른소리도 이 공간에선 오히려 익숙하다. 마초들이 우글우글한 정글을 피해 잠깐 쉴 수 있는 초식동물들의 세상이다.

 

 

강봉훈 기자

 

<사진=권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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